원망은 무겁고 교만은 가볍다.
子曰 貧而無怨難 富而無驕易(자왈 빈이무원난 부이무교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난한데도 원망하지 않기는 어려워도,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
-『논어』, 헌문(憲問)(14/11)에서
어머니 곁에서 짬짬이 문고판 논어를 읽다가 발견한 대목입니다. 예수나 부처라면 하시지 않을 말씀을 공자는 하시니 흥미로웠습니다. 성인은 가난한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왜 공자는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집에 논어 해설서가 7~8권 있는데 이 대목을 모두 들춰봐도 딱히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해설이 아예 없거나 소략한 편이라서 의외였는데 점잖은 학자들이 이 장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인상마저 받았습니다.
아무튼 해설서들을 바탕으로 하여 제 나름대로 공자 말씀을 더듬어보면 다음과 같이 도식화됩니다.
①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 > ② 부유하면서 교만하기 > ③ 가난하면서 원망하기
앞장에서 백씨(伯氏)의 관중에 대한 무원(無怨)을 거론하고 있으니까 공자는 ①을 최상위에 두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①은 어려운 일이니까 우선 제쳐두고, ②와 ③간에 굳이 위계(位階)를 설정해줌으로써 보다 실행 가능한 수준으로 범위를 축소시켜 주신 것으로 해석하니까 제 경험에 비춰 납득이 갔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장사꾼인지 일용노동자인지 모를 생활을 해왔습니다. 처음 장사를 했을 때는 바닥상태를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소한 일로 원망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또 최소 생계를 확보한 후에는 저처럼 어려웠던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지분을 나눠주며 함께 장사를 해보기도 했지만 이는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별로 가진 게 없는 상태에서 베푸는 삶의 실행은 주고받는 입장과 관계없이 당사자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는 단계에 이르기 쉽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부유하지 못하므로 원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부유하면서 교만한 삶을 동경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유연하게 살피면 원망보다는 교만을 상위에 두는 공자의 사려 깊음이 타당하다고 여겨집니다. 교만은 가벼워 공기 속으로 날아가기 쉽지만 원망은 무거워 땅 끝 깊게 뿌리를 박고 있으니까요.
장사하려는 이라면 형편이 딱하더라도 가급적 남의 도움 받지 않고 최소 생계 수준까지 자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장사를 반듯하게 익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큰 원망을 하거나 사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살다보면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이분법적 흑백논리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사람을 접할 때가 있는데 앞으로 공자 말씀을 전해주어야겠습니다.
원망은 무겁고 교만은 가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