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길


치매를 A, B, C 등급으로 나눌 때 어머니는 현재 A 등급을 유지하고 있고 그 A를 다시 (+),(0),(-)로 세분화할 때 A-단계에 있습니다. 그 A-를 다시 (상), (중), (하)로 구분한다면, 어머니는 대개 오전에 A- (중) 또는 (하) 단계에서 출발하여 점차 컨디션이 상승하여 저녁 때는 A- (중) 또는 (상)의 단계로 하루를 마무리 하십니다.


치매노인이라고 하면 바깥 출입을 못하고 집안에서 자리보전을 하거나 요양원 같은 곳에 격리된 채로 지내야 하는 줄 압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다닌 지난 1년 반의 경험에 따르면, 밀착 마크를 함으로써 치유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급격한 병세 악화는 방어했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저의 방식이 그리 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 길 없는 길이자 동시에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주관적 길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될 간병 과정을 남겨두고 싶습니다. 모르기는 하지만 현재 최고 수준의 케어를 받고 있는 어머니의 치매 치유 과정을 객관적으로 기록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다른 분에게 참조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치매 치료 요법


현재 어머니에게 행해지고 있는 치매 치료 요법은 다음 3가지입니다.


① 대학병원 정기 검진 및 투약

4개월에 한번씩 검진을 받고 고혈압과 치매 약을 처방받아 아침 저녁으로 드시고 있습니다. 몇년전부터 양방 진료를 받아온 방식입니다.


② 한방 치료법

녹내장을 앓고 있는 안선생의 주치의 김박사님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3번 한의원에 가는데 이중 1~2번은 김박사님에게서 직접 침을 맞고 한 달에 한번 씩 한약을 새로 조제해 매일 아침, 점심, 저녁 3회 먹고 있습니다.

한방치료를 받은 지 1년이 되었습니다.


③ 사적인 간병 방식

제 나름으로 개발한 치매 치료 프로그램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생활하면서 주의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주는 방식입니다. 특이한 점은 보통사람처럼 정상적으로 사무실에 출퇴근합니다.

휴일에도 사무실에 출퇴근하면서 생활리듬을 잃지 않도록 합니다. 저녁에도 공연 관람이나 외식 등 바깥 나들이를 자주 함으로써 방안에서 누워 계신 시간을 줄여 깨어 있는 상태를 가급적 오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현재 가능한 모든 진료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다음에는 구체적으로 각 방식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① 대학병원 검진 및 투약


몇 년 전까지 저는 병원을 거의 다녀본 적이 없어 치매를 병원 무슨 과에서 담당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집이 뉴타운 예정지역이라 사무실 근처 대학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갔습니다. 신경과로 가라고 하더군요. 중풍이나 치매, 파킨슨 병이 바로 신경과 소관이더군요.


처음에는 MRI 검사와 당사자 문답을 통한 치매 확인 검사를 했습니다. MRI는 뇌 상태를 점검해서 초기 진료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일 터인데 치매 확인 검사라는 것은 사실 요식적이다 싶더군요. 요즘 보건소에서도 치매 검사를 해준다고 하는데 마찬가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2달에 한번 가서 1~2분 정도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약국에서 고혈압과 치매 약을 받아왔습니다. 요즘은 어머니 신체 상태가 겉보기에 비교적 건강한 편이라고 해서 4개월에 한번 병원에 갑니다. 4개월 약값이 20만원이니까 월 5만원 정도 지출되는 셈입니다. 의사선생님께 비싼 약을 처방해달라고 했으니까 다른 약은 아마 이보다 값이 낮을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양방에서 행해지는 치매 치료법의 전부입니다. 앞으로 연구 개발이 더 진척돼 획기적인 치매 약이 개발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현주소입니다. 다른 병은 모르겠지만, 치매에 관한한 양방의 입장은 좀 심하게 말해서 약 타먹고 알아서 살라는 얘기 같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면 요양원이니 실버타운이니 하는 곳에서 '부모님처럼 모시겠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치료비 즉 약값은 얼마 들지 않으니까 입주 및 보호를 위한 시설관리비 및 인건비 등의 경상비(經常費)가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 분명합니다. 한마디로 보호 관리는 해주지만 치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케이블 방송 같은 데서 광고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치매 보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치료 자체가 부재한 상태에서 무엇을 위한 보험이겠습니까? 보험금이란 것도 보호 관리를 위한 연명비에 불과할 뿐이라고 해야겠지요.


기초적이고 대중적인 치매 예방 및 치료로서의 양방의 의의는 있을 것입니다. 또 요양원 같은 보호시설과 관련 보험 상품 및 사회보장제도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호관리를 우선 목표로 하는 방식은 치매의 궁극적인 치유 방향이 아닐 것입니다.

 

② 한방 치료법

 

저는 그전까지 병원 출입이 거의 없었으니 양방은 물론이고 한방에 관해서는 더더욱 문외한이었습니다. 2년 전에 어머니 기력이 떨어져 잘 걷지 못하셨을 때 한의원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한의사가 엉뚱한 소리를 해서 실망한 기억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6월경 화타오금희 회식을 저희 집에서 했을 때,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던 안선생이 어머니 용태를 보고 자신이 침을 놓아주겠다고 하더군요. 당시만 해도 어머니가 밤에 잠을 잘 주무시지 않고 뒤적거린다든가 하셔 저도 잠을 잘 자지 못했던 상황입니다.

 

저는 안선생이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지만 당시 그가 숙식을 해결하던 화타오금희 본부가 저희집에서 100미터 거리의 지척인지라 한번 해보자고 했습니다. 안선생은 앞이 희미하게만 보이는 시각장애인인데 맹학교에서 교사를 하다가 침술에 심취해 건강을 잃고 요양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에게서 일주일에 2~3번씩 3개월간 침을 맞았는데 하루는 안선생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 기초공사를 된 것 같으니 앞으로는 자신의 주치의이자 스승인 명의(名醫)1) 김박사님께 가서 같이 침을 맞자는 것이었습니다.

한방 원리에 대해 여전히 까막눈이었지만 불치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재활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안선생이 추천하는 분이라서 신뢰할 만하다고 보고 김박사님 한의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한의원을 다닌 지 1년이 되어 갑니다. 그간의 침과 한약의 효험을 객관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어머니 치매 용태를 가장 잘 아는 제가 느끼기에 전반적으로 어머니 인지력이 1년 전에 비해 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수선함 같은 것은 확실히 줄어들었고 안정적인 기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A, B, C의 세 등급 중에서 주로 A에 머물고 있으며 B로 떨어지는 일은 드문 편입니다. 뭔가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거동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방치했으면 B로 떨어지기 쉬웠을 것을 초기에 A 방어선을 지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몸의 근원부터 치료해가기 때문에 회복될 수 있다는 약간의 희망을 남겨준다는 점이 치매에 있어 양방과 다른 것 같습니다.(한방에서 불치병은 없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한방치료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이정도의 경험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매년 많은 한의사가 배출되고 있기에 그 중에서 문리가 트인 명의(名醫)를 문외한이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안선생을 알게 된 것을 개인적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③ 사적인 간병 방식

 

제 나름대로 고안해낸 치매 치료 프로그램은 어머니의 요즘 하루 일정과 같습니다.


9시 : 출근 드라이브

10~12시반 : 오전 일과 (어머니 용태에 따라서 퍼즐 맞추기, 블록 쌓기, 동화책읽기, 컴퓨터 타자연습 등)

12시반~2시반 : 점심 나들이, 보행연습, 목욕

2시반~4시 : 오후 일과 (오전일과와 내용은 같음)

4시~5시 : 한의원 이동 드라이브

5시~6시 : 침 맞기

6시~7시 : 귀가 드라이브

저녁 시간대 : 저녁 나들이(외식, 공연 관람 등), 또는 집에서 저녁 식사 및 TV 시청

10시 : 취침


이같은 편성은 어머니의 당일 컨디션에 따라 다소 변동될 수 있습니다. 한의원을 가지 않는 날이나 휴일에는 약간의 변화를 주고 있지만 기본틀은 바뀌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집에 누워 계시게 하기보다는 드라이브와 잦은 이동을 통해 신체를 움직임으로써 심신에 자극을 주려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지속적으로 어머니 말 상대가 되어 주고 대략 2시간 간격으로 소변을 도와드리면서 심신 상태를 모니터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방식은 사실 종래 집안에서 수발을 들던 방식과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소 수동적이라면 제 방식은 정상인처럼 생활하시도록 도와드리면서 객관적으로 컨디션을 체크하기 때문에 훨씬 적극적이면서 능동적입니다.

또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밀착 마크함으로써 어머니 상태의 변주와 그 주기를 진단하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 결과 정상인에 비해 기력과 인지력은 많이 떨어지지만 특별하게 아픈 데 없이 어쨌든 정상인처럼 삶을 향유하고 계신 상태입니다.

 

④ 각 방식의 장단점 검토 및 저의 잠정 결론

 

이상과 같은 치매 치료법은 다음과 같은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① 대학병원 검진 및 투약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 진료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첨단의술 발달에 따라 언젠가는 획기적인 치료법과 신약이 개발될 날이 있겠지요. 그러나 앞서 말씀 드린 대로 불과 몇 분의 진단으로 치매를 치료한다는 것은 요식행위로 여겨질 수 있고 실제적 효과도 미지수입니다.


② 한방 치료법

치매 원인을 근원적으로 찾아가면서 치료 하는 방식이라서 치매를 지체시키는데 있어 양방보다 우위에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한방 치료법은 일반 한의사와 명의 간의 실력 차가 아주 큰듯하며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 일반인들이 선뜻 한방을 선택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침을 맞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여유 있는 보호자 없이는 장기간 병원 출입하기 쉽지 않습니다.


③ 사적인 간병 방식

요양원 간병 방식보다 나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환자에게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 줄뿐 아니라 아주 밀착되어 정확하게 용태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케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고 의학지식이 없어 주먹구구식으로 섣부른 진단을 내릴 소지가 많습니다.


이같은 여러 사정과 이유로 해서 암 같은 병과 달리 치매는 그 위중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방치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위 세 가지 방식을 모두 활용해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2년의 간병 과정을 통해 제 나름으로 습득한 치매 치료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치매를 두렵게 생각하기보다는 감기처럼 일상적인 병으로 간주하고 잘 간병하면 정상적으로 가정생활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둘째, 방치하기보다는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면 급격한 상태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물론 치매라는 것이 현재 진행형이라서 위와 같은 저의 입장이 바뀔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의 간병 과정을 기록해두기로 했습니다. 어머니의 치유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지만 생(生) 데이터를 남겨둔다면 다른 분들에게도 충분히 참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보론,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의 치매 대처법의 문제점


이따금 전희식님이 쓴 <똥꽃>을 제게 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치매 노모를 홀로 모시는 모습이 저와 비슷하게 보여서 그렇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분 사연을 책이 나오기 전에 신동아라는 월간지에서 이미 읽은 적이 있기도 하고 나중에 나온 <엄마하고 나하고>도 구입해봤습니다. 한마디로 독자들이 어머니를 모시는 모습에 감명을 받을 내용이고 글쓰기도 뛰어난 책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는데 무엇보다 구체적인 치매 요법과 그 효용에 대한 기술이 미흡하여 독자들이 치매에 대한 초기 대처를 소홀히 할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①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의 경우, 가족의 집에서 사시던 치매 노모를 전희식님이 시골로 모셔와 함께 살아가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앞서 제가 구분한 A, B, C의 등급에서 이미 B상태에 있는 노모를 모셔온 듯 합니다. 왜냐하면 책에서는 저희 어머니와 같이 A에서의 주기성과 관계성을 잘 보여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노모가 저희 어머니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초기에 적극적인 대응이 미흡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② 저자는 개인 간병을 병행하면서 나름의 대체의학적 관점에서 치매를 접근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발상일 수 있습니다. 왜 그러한지 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도 초기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출퇴근하면서 홀로 간병을 했습니다. 한밤에 깨셔 B상태에 자주 떨어지셨습니다. 방도를 모르니까 치매라면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고 잦아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한방치료를 병행하면서 정상인처럼 정신이 맑지는 못하지만 소란을 피운다거나 성격이 날카로워지는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시간 날 때마나 공연도 보러 다니실 수 있는 정도가 됐습니다. 요즘은 거의 A-, 그 중의 (상), (중), (하) 범위에서 삶을 영위하십니다.

저 혼자 간병했다면 바쁘기만 했지 이 정도의 효험을 낳지는 못 했을 것이기에 안선생을 제 때 만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 고유의 긴 역사를 지닌 한방을 놓아두고 대체의학을 궁리한답시고 중요한 치료 시기를 놓친다면 간병인으로서 큰 불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물론 암이나 여타 불치병을 산 속에서 지내며 대체요법으로 치유했다는 수기도 간혹 접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정신을 갖고 있는 환자의 얘기이고 치매는 상황이 다릅니다).


제 요지는 이렇습니다. 수필집이라고 하더라도 치매에 관한한 구체적인 치료요법과 효험을 정확하게 기술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치매 환자를 둔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수필집을 읽는 동안의 감동은 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치매 치료 접근법은 환자는 물론 가족을 오랫동안 평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저는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에서 나온 저자의 방식을 치매에 관한 타당한 대처법이라고 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