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주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대로 기도합시다."

 

감사성찬례 중에 사제가 이렇게 선창으로 시작하면, 참례자들은 다함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로 한 목소리로 기도를 드립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다 잘 알려진 기도이고, 크리스찬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기도입니다.

 

문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런 만큼 기도의 내용이 실행에 옮겨지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기도의 모범으로, 하느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와 이웃과의 수평적 관계가 십자가 모양을 이루는 균형 잡힌 신앙을 가르치신

주님의 뜻이 다만 기도문을 습관적으로 외우는 것으로 그쳐져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종교개혁자 루터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최대의 순교자는 주의 기도이다."라고 갈파하고, 말로 하는 기도에만

그치고 마는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따갑게 지적한바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시자 한 제자가 찾아와  '어떻게'기도해야 할지 모른다고 고백했습니다.

기도할 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으니 참으로 기특한 제자입니다.

그에게 주님께서 '이렇게'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기에 '주의 기도'입니다.

'나',   '너' 의 기도  ,  '우리'의  기도가 아니라 주의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서투름과 능숙함보다는 기도의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내 소원을 하느님께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는 주일학교 어린이와 같은 '주세요'기도도 중요합니다.

또 오늘 친구를 찾아가 귀찮게 졸라댄 아이처럼 ' 땡깡기도'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이고, '내'가 기도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기도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잔뜩 내게 필요한 목록을 열거한 후에 '믿습니다'를 외친다고 그것이 기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인자함과 성실함(시편138편)을 믿으며, 비록 죄많은 소돔과 고모라일지라고 이웃들의 멸망을 막고자 기도했던

아브라람의 뼈아픈 심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더 좋은 것 즉 성령으로(루가11:13), 하느님의 숨결로 우리와 세상을 채워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